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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하기 위해 회사 3군데 정도 면접을 봤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더 준비해서 이직했어야 했는데 그런걸 생각할 줄 모르는 철부지였던 때다. 첫번째 면접 봤던 곳은 지식 데이터베이스 서비스를 만들던 곳이었는데, 화려한 수식어와는 별개로 어두컴컴한 사무실에서 면접을 보았고, 면접관이 사무실 구석 침대방에서 자다가 나오셨다. 간단한 면접을 진행했는데 오퍼를 받진 못했다. 두번째 회사는 GIS 시스템을 개발하는 곳이었다. 면접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 실무진 면접 관들로부터는 최종 수락에 가까운 전화 통화를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며칠 뒤 경영진에서 채용 시켜주기로 한 사람이 있어서 본 채용은 진행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기억이 가물한데 이렇게 꽂아준 분이 유명가수 모씨 였던 걸로 추정하고 있다. 이 분은 나중에 군대를 다시 가게 되었다.
아무튼 그리고 나서 면접 본 곳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던 게임 개발 회사였다. 웹 기반 보드 게임이 주요 사업이었으나, 이미 자리 잡은 한게임, 네오위즈, 넷마블등 5N 회사 사이에서 버티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피쳐폰에서 실행되는 모바일 게임 개발을 먹고 살기 위해 하고 시작했었는데, 이 부분의 매출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모바일 게임 개발팀으로 배정받고, 맡은 첫번째 작업은 LGT 용 성인용 게임이었다. 당시 모바일 게임은 1인 1제품 개발 모드였는데, 신입이 첫번째 시도를 하기에 일반 카테고리는 리스크가 있으니 조금 더 작은 곳에서 첫번째 작업을 해보도록 한 것이었다. 게임은 화면 내 가로 세로 커서를 움직여 영역을 닫히도록 만들면 새로 얻은 영역의 배경 이미지를 갱신하는 식이었다. 쉽게 말해 누드 땅따먹기다.
이 당시 모바일 게임들은 이동통신사가 정해 놓은 게임카테고리 안에서 경쟁하는 것이었다. 성인용 게임 카테고리에서 땅따먹기 게임들이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문제는 화면 갱신 속도 였다. 땅을 먹으면 그 부분이 빠르게 업데이트 되고 게임 플레이를 이어갈 수 있어야 했는데, 판매중인 게임들은 이 갱신 속도가 현저히 느려 게임플레이에 지장이 있었다.
당시 LGT 용 개발 sdk 에서 일부 API 를 잘 쓰면 해당 기능 구현이 가능할 듯 하여, 지금 돌이켜 보면 막무가내 알고리즘을 만들어 가능한 최소 갯수의 직사각형의 합으로 따먹은 땅만큼 커버하여 화면 업데이트를 하도록 구현하였고 기존의 게임들보다는 성능이 잘나와서 해당 카테고리의 상위 순위에 랭크 되었다.
그러나 1인 개발 방식의 모바일 게임 개발은 나와는 잘 맞지 않았다. 본질적으로 한번 만들어 팔면 그 만인 식의 개발은 코드 구조와 품질을 높이기 위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고, 개발 작업을 혼자서 진행하다보니 협업할 기회도 별로 없었다. 회사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찍어내는 게임의 수는 적지 않은데 반해 이를 모두 감당할 기획과 디자이너는 부족하다보니 개발자가 기획을 재검토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그 다음 프로젝트로 만들었던 게임은 퀴즈 게임이었는데, 첫 버전은 완전히 망하였고 이 게임을 어떻게든 재밌게 만들어보라는 요구를 개발자로서 받으면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이 후 이 게임은 새로운 디자인으로 리뉴얼 해서 수능 퀴즈 게임으로 출시하였고, 그나마 나은 성적을 다시 거두었다. 게임의 흥미 요소를 구현 단계에서 추가하기에는 쉽지 않은데, 1인 개발이다 보니 이런 요구를 받게 되는 상황은 상당히 못마땅했다. 모바일게임팀에서의 경험은 프로젝트 운영과 방식 등에 대한 불만으로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진 않다.
이때 겪은 경험의 긍정적인 측면은 게임 만드는 걸 처음으로 해보게 되었고, 게임 개발은 응용 개발과는 정말 많이 다르다는 걸 몸으로 배우게 되었다. 또한 제한된 리소스에서 더 많은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한 방법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관리 관련된 서적들을 많이 읽었고, 당시 유행하던 애자일방법론 관련 서적들도 많이 읽기 시작했다.
이후 온라인게임 서비스들 리뉴얼 계획이 진행되면서 온라인게임팀으로 팀을 옮겨 근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