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의 새로운 분 심층 면접 때, 나의 소개 겸 간단한 이력을 이야기하곤 한다. 반복되는 내용을 블로그에 정리해 두면 좋겠다는 생각에 여기에 정리해 보기로 했다.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며, 내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한 대로 기술하는 것이므로 객관적이기보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글이 될 것이다.
개발자 커리어로 보면 25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2000년 6월 25일,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권 SI 회사에 병역특례로 입사했다. SI 중에서도 금융 쪽이 특히 힘들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시절 사무실은 SI 특유의 고된 업무 환경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활기가 넘치는 공간이기도 했다. 야근은 당연했고, 회사에 놓인 군용 간이 침대에서 밤을 보내는 날이 집에서 잠을 자는 날보다 많았지만, 젊음 덕분인지 그럭저럭 즐기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국민은행 프로젝트가 끝나고 산업은행에 파견 근무를 가게 되었다. 은행 측 담당 과장은 개발 중인 사항들을 매일 단위로 테스트한다고 했다. 개발된 내용을 무작위로 클릭한 후 오류가 발생하면, 즉시 우리 사장부터 줄줄이 호출되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해당 과장이 퇴근한 후 개발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오후 3시쯤 출근하여 다음 날 새벽 3시쯤 퇴근하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갑질이었다. 3개월 정도 지나자 몸은 점점 말라갔고,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상생활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에 더 이상 이러한 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던 찰나, 이번에는 인천(농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까지 파견을 가라는 회사의 지시를 받았다. 당시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고 있었기에 인천까지의 출퇴근은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곧바로 이직할 곳을 찾아 나섰다.
약 1년 반 동안의 금융 SI 경험은 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다시는 이 업계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생과 저임금을 병역특례라는 이유로 그저 감수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다음 이직 시에는 반드시 출퇴근이 용이한 회사로 가서, 회사에서 잠을 자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 SI 경험을 통해 얻은 것도 분명히 있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이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굳이 해석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높은 수준의 보안이 요구되는 금융권 시스템, 특히 중계 서버 개발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 많은 인력이 동시에 투입되는 대규모 SI 개발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었다.
- 힘든 경험을 통해 자신감이 크게 향상되었다.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단점들은 너무 많을 듯 해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만, 실제 업무 경험에 비해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앞으로도 비슷한 개발 환경에서만 일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고생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생각에 인생의 첫 이직을 결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