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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떠오를 때 마다 어떤 식으로든 정리를 해둬야 한다. 두서없이 어딘가에 써두는 덤핑을 해둘 수도 있고, 곰곰히 생각해서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생각으로 압축 요약해 둘 수도 있다.

정리를 해두지 않으면 스트레스 수치가 올라간다. 정리해 두지 않고 방치하면 의식 속 한 구석에서 계속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마치 백그라운드에서 몰래 돌아가는 프로그램처럼 CPU 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다 이런 것들이 하나 둘 늘어나 어느 시점이 되면, 늘 머릿속이 개운치 않고 산만한 모습이 되고 만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선 열심히 배수 작업을 해야 한다. 몰려드는 하수들을 제때 처리해 두지 않으면 하수관이 통째로 막혀버리는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처리된 하수 폐기물들을 재활용하기 위해 외부로 방출하게 되는데, 그 결과가 내 블로그에 기록되어 있는 글들이다. 그렇다. 블로그 구독자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나는 내 블로그를 폐기물 매립의 장으로 쓰고 있다. 매립지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하다.

그렇게 지내오다 작년부터 가치관이 바뀌는 경험을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이와 더불어 블로그 글 쓰기가 되지 않는다. 예전에 블로그에 글을 쓸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경쾌하게 썼다. 일단 자리에 앉아서 쓰기 시작하면 빠른 시간 안에 마무리를 지었다. 바로 공개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초안은 그 자리에서 다 썼다.

요즘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한 두 문단 쓰다가도 갈피를 못 잡고 쓰던 걸 그만 두고 만다. 그나마 썼던 몇 문단도 그 상태로 방치하다 나중에 지워버린다. 작가도 아닌 인간이 작가들이 걸린다는 병에 걸린 꼴이다.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고심하던 차에 이런 결론을 내렸다. 위에서 든 비유에 끼워넣자면, 나는 하수처리 시스템을 개비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예전 같으면 “오케이 이 정도면 매립지로 올려보내!” 라는 싸인이 났음직한 것들에도 자기 검열이 동작한다. “이 글에 쓰인 게 정말 내 생각이 맞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거 맞아?” 라는 물음에 답을 못하고 글은 파기되어 재처리를 기다리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시스템 개비를 서두르기 위해서 양서를 많이 읽어 보려고 한다. 그것도 가능하면 고전으로 읽으려고 한다. 그 사이 발생하는 생각 폐기물들은 들고 다니는 작은 노트에 일단 덤프를 해두고 있다. 넉달 전부터 이렇게 쓰고 있다. 몇페이지 안된느 작은 노트라 금새 다 쓸 줄 알았는데, 웬 걸 이제 막 절반 정도 썼다. 어쨋든 그렇게 시스템 개비 완료와 함께 새로운 폐기물들을 여기 매립해 둘 것이다.

“좋아. 이 정도면 훌륭한 핑계다. 이제 이 폐기물을 매립하라”

(상부의 허가가 났다. 이 글은 글 무덤에 퍼블리싱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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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 Sung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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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ong's Blog

Developer + Entrepreneur = Entrevelo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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