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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링크 : 행복한 부부로 사는 법-법륜스님

행복한 부부로 사는 법
                                              법륜 스님 / 본지 발행인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크게 네 번의 과정을 거친다고 하지요. 첫 번째는 태어났을 때, 두 번째는 성인이 되었을 때, 세 번째는 결혼할 때, 네 번째는 죽을 때입니다. 오늘 그 네 과정 중, 결혼을 하게 되는 두 분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렇게 결혼하는 주인공들과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많은 분들을 위해 몇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결혼해서 살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 상대에게 사랑을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남편이나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고 권리입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고 내가 사랑하니까 당신도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널 사랑하니까 너도 나를 사랑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나는 단지 상대를 사랑할 뿐,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몫입니다. 내가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사랑을 요구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욕망입니다. 다만 내가 그를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나는 행복할 뿐입니다.

  두 번째, 부부간에는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아야 합니다. 공동체 중에 제일 작은 공동체가 가족이지요. 가족공동체에서는 손익을 따지지 않아야 합니다. 결혼한 뒤에 아내가 아파서 평생 누워 있게 되어도 남편은 죽을 때까지 아내를 보살펴야 하고, 남편이 다쳐 평생 일을 못하게 되어도 아내는 남편을 평생 보살펴야 합니다. 자식이 신체장애자여도, 부모님이 앓아 누워계셔도 부모와 자식은 서로 평생 보살펴야 합니다. 그것이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는 이해를 따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이 만나면 공동체의 첫 단계인 부부가 되고, 장인 장모, 시아버지 시어머니와 두 사람 사이에 난 자식이 가족공동체의 구성원이 됩니다. 그래서 수평적으로는 부부관계가 되고 위, 아래로는 부모 자식 관계가 됩니다. 이렇게 부부와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공동체 안에서는 이해관계를 떠나 내가 할 일을 마땅히 내가 할 뿐이어야 합니다.

  가족과 가족 사이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으면 바로 사회공동체가 됩니다. 사회공동체의 가장 큰 단위는 민족이나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각 가족 단위가 이해관계를 다투고 각 집단과 지역이 이익을 다투기 때문이고 가정이 혼란스러운 것은 가족의 구성원인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이 이해관계로 다투기 때문입니다. 인류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민족이, 국가와 국가간에 배타적 이해관계를 추구하게 되면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나의 민족을 소중하게 여기듯이 다른 민족, 다른 국가를 인정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다른 생명까지 함께 생각하면 생명공동체가 형성이 되겠지요. 인간만 생각한다면 제일 작은 공동체가 가족공동체이고, 제일 큰 공동체가 인류공동체입니다.

  공동체는 그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돕는 상부상조, 공리공생의 관계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공리공생의 관계가 가장 두터운 게 가족공동체입니다. 가족공동체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서 사회공동체, 민족공동체, 인류공동체의 화합을 꿈꾼다면,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지요.

  오늘 두 분은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가족공동체를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세상을 두 분이 힘을 합해서 만들어 보는 겁니다. 이것이 쉬울 것 같은데 쉽지 않습니다. 음식을 같이 먹어도 한사람은 짜다 하고 한사람은 싱겁다고 합니다. 부딪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결혼해서 함께 살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작은 사건들이에요. 안개 속에 있으면 옷 젖는 줄 모른다고 하는 것처럼 작은 사건들이 쌓이고 쌓이면 헤어지게 됩니다. 어쩌다가 화를 냈다든지, 말을 가볍게 함부로 했다든지, 이런 별것 아닌 일들은 작아서 설사 마음이 상했다 하더라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말하면 마음이 좁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고, 또 말하면 핀잔을 듣게 될 것 같아 불만이 잠재적으로 쌓이게 되지요. 이걸 유의해야 해요. 이미 서로 사랑해서 만났기 때문에 큰 일로 싸울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작은 일은 사사건건 부딪칩니다. 처음에는 이 작은 부딪힘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만 1, 2년이 지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서로에게 상처가 됩니다. 그래서 못 살겠다 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큰 사건이 생기면 둘이 힘을 합쳐 해결하지만, 이렇게 작은 부딪침이 잦으면 서로 상처를 입게 되고 외부에서 큰 사건이 생겨도 마음을 합하여 대처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이혼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헤어질 때는 누가 봐도 헤어질 만한 이유가 되지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잘 살펴보면 그 사건 때문에 헤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둘이 뜻이 맞을 때 일어나는 외부사건은 부부의 마음을 모으는 데 좋은 역할을 하지만, 둘의 마음이 틀어져 있을 때에는 외부사건은 서로가 멀어지는 데 좋은 핑계 거리가 됩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 큰 일이 헤어지는 원인이 되는 게 아니라 아주 작고 미세한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서로를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불행을 받지 않으려면 첫 번째, 수행을 해야 합니다. 늘 자기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속에 쌓여있는 스트레스를 알아차리고, 또 자기의 작은 말과 행동들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호흡을 관하고 몸에 일어나는 작은 느낌을 관하면서 자기 마음속의 미세한 불만, 부주의를 다 알아차려 이 작은 스트레스들을 미연에 막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내속에 쌓인 스트레스도 내가 제어할 수 있고, 무의식적으로 내가 상대에게 주는 작은 실수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수행을 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무지한 상태로 습관적으로 살기 때문에 상대가 어떨 때 스트레스를 받는지 부부간에도 알 수가 없어요. 헤어질 정도까지 됐을 때도 상대의 마음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원망하지요. 불만이 있으면 미리 이야기하면 되지, 어떻게 저렇게까지 생각이 가버렸느냐고 하지만 처음엔 작아서 얘기하기도 어렵지요. 또 상처를 준 상대방은 그게 너무 작은 일이기 때문에 자신이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아내나 남편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손을 잡거나 머리를 만졌을 때라도  상대방이 탁 뿌리친다든지 “왜 이래?”라고 좀 강하게 하면 그때 순간적으로 거부당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 둘 쌓이면 말은 안 해도 상대가 나를 싫어하는 걸로 받아들이게 되지요.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 부부가 된다고 하지만 부부가 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두 사람이 서로 상대를 내 것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는 함부로 대하고 반면에 상대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큰 상처를 입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부부관계일수록 서로에게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 사는 것만 못합니다. 그래서 결혼 초에 불쾌한 감정이 미세하게 일어날 때 유의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결혼을 안 한 사람들은 수행을 좀 안 해도 괜찮아요. 상대에게 피해주는 게 적기 때문이지요. 결혼해서 살면 우선 서로에게 민감해지고, 가까이 있으면서 주고받는 갈등이 많습니다. 그런데다가 자식이 생기면 성숙하지 못한 부부관계 때문에 자식이 입는 피해는더 큽니다. 여러분들 자신도 한번 돌아보세요. 어떤 일을 할 때, 일관되게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넘어지고 우왕좌왕하는 것은 대부분 어릴 때 부모로부터 받은 업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심성이 건강한 사람이 드물지요. 심성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부모의 심리가 안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자신을 살펴봤을 때, 공부가 덜 됐다 싶으면 결혼할 생각을 하지 마세요. 그래도 자신을 살펴봤을 때, 자기 조절이 된다 하는 분은 결혼은 하더라도 자식은 안 낳는 게 좋습니다. 만약 자식을 낳으려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낳아야 합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서 행복해지는 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의무이고 책임입니다. 그러려면 부부관계가 좋고 부모의 심리상태가 안정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다른 환경, 다른 습관으로 자라온 이 두 사람의 성격이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요. 서로의 성격이 잘 맞지 않는데도 서로를 사랑하고 좋아해서 결혼하게 됐으니 살다보면 소소한 실망이 많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걸 미리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앞으로 맞춰 살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참선하고 절하는 게 수행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맞춰 살아가는 것이 수행이에요.

  예를 들어 음식을 먹더라도 입맛이 서로 다르겠지요. 그러면 한사람은 음식을 그냥 먹고 한사람은 소금을 항상 놔두고 제각각 간을 맞춰서 먹는 방법도 있지만 둘이 간을 맞추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렇게 간을 맞추듯이 자꾸 같이 맞춰 가야 해요. 맞춰 가는 이것이 공부입니다.

  지금 이렇게 결혼을 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을 말씀드렸어요. 첫 번째는 내가 그냥 상대를 사랑할 뿐이지 사랑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서로가 안 맞는 것을 전제로 하고 출발해서 앞으로 서로 맞추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맞추는 길은 두 가지에요. 내가 전적으로 상대에게 맞추는 수행방법이 있습니다. 나를 탁 내려버리고 “예. 예.” 하면서 맞추는 방법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철저하게 둘이 싸우면서 절충하는 방법이에요. 그런데 불자는 싸우면서 맞추면 안 돼요. 우리는 수행자로서 맞춰야 하니까 상대에게 요구하지 말고 내가 맞춘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맞추기 위해서는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취향이든 취미든 생활태도든 전부 다릅니다. 한사람은  왜 청소를 자주 안 하느냐고 불만인데 다른 한사람은 청소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또 청소하라는 거냐며 불만스러워합니다. 이렇게 늘 서로 안 맞아요. 옳고 그른 게 아니라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상대편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 이 사람은 이렇게 자랐구나, 저렇게 교육 받았구나,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이해해야 해요. 먼저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음에는 상대를 이해하는 거예요. 인정하고 이해하고 한발 더 나아가 맞춰간다면 이 세상 어떤 사람하고도 살 수 있어요. 거기에는 궁합도 사주팔자도 다 없지요. 나를 내려놓고 상대에게 맞추기만 하면 문제는 없어요. 여러 문제가 생겨도 걱정할 게 없어요. 그렇게 잘 한번 살아보세요.

                                    -월간 정토 9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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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멀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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