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에 컵라면을 하나 먹었습니다. 삼양 컵라면 입니다. 이걸 먹다 보니 컵라면을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제가 초등학교 4 학년 때의 일입니다. 집이 이사를 갔지만 전학을 가지 않고 다니던 학교를 계속 나가던 때였습니다. 학교는 대구국민학교 였고 저희 집은 수성구 파동 이라는 곳이었습니다. 버스타고 30, 40 분 정도가 걸리니 꽤 먼 거리였지요.
어쨋든 매일 학교를 버스타고 다니니 집과 학교 사이의 도로를 잘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랑 대구 시내를 자전거로 일주해 보기로 했습니다. 통학하는 길을 잘 아는 것하고 대구 전체를 돌아 보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하시겠지만, 그 땐 그랬습니다. 초등학교 4 학년이면 겁을 조금씩 상실해 갈 나이지요. 당연히 부모님께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뭐라고 말씀드리고 하루종일 돌아다녔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네요.
아무튼 그렇게 일요일날 가기로 약속을 한뒤, 당일날 저는 집에서 부터 자전거를 타고
수성구 파동 --> 대구국민학교(친구합류) --> 동아 쇼핑 센터 --> 두류 공원 --> 앞산 --> 어린이 회관(친구와 헤어짐) --> 집 (파동) 의 대장정을 했습니다. 하루 종일 걸렸지요.
밥도 먹지 않고 쫄쫄 굶으며 그렇게 돌아다니다 어린이 회관에서 250 원을 주고 컵라면을 사먹었었습니다. (그 회관 입장도 요금을 내지 않고 담을 타넘어 들어갔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4학년이니까요) 그 때 사 먹었던 그 라면, 뜨거운 물도 없어 미지근한 물에 풀어 먹었던 그 컵라면. 정말 맛있었습니다. 첫 젓가락질을 하던 그 기억이 잊혀지질 않네요. 그 뒤로 집에서 일부러 미지근한 물로 컵라면을 해먹곤 했지만 같은 맛은 나지 않더군요.
지금 돌이켜보니 참 정신나간 행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전거를 인도로 타고 다녔던 것도 아니고 도로에서 녹색불이 들어오면 차랑 같이 움직였으니... 함께 돌아다녔던 그 녀석은 요즘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도 궁금하네요. 조그만 컵라면 하나가 배를 불려준 때문인지 아니면 후덥지근한 열대야 때문인지 잠도 잘 안 오는 밤이라 몇자 끄적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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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동선을 한번 그려봤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해보세요. 그때는 이 정도면 대구 한 바퀴를 다 돈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려보니 1/5 정도도 안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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