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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년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나에게 모든 것은 새로웠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객지 생활의 시작이었고, 남의 집에 얹혀 사는 하숙 생활의 시작이었다. 친구들과 달리 기숙사 추첨에 혼자 떨어지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였다.

낯선 대학생활. 그래도 열심히 해보겠다는 마음을 다졌지만, 그때 새롭게 접했던 모든 것들은 나에게 충격과도 같았다. 운동권이라 불리는 형, 누나들을 따라 다녀 보기도 했지만 내 기억 속 그들에게 투쟁이란 그들의 말과는 달리 취미 수준에 그쳐있는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기껏해야 대학 2, 3 학년인 걔들에게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란 걸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는 그랬었다. 그런 만남 속에서 전공에 대해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길 바랬다. 하지만 이 때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행동이 말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아니 나에겐 높은 선배였을 지 몰라도 역시 이들도 세상을 배워가는 어린 학생이었을 뿐이었다. 어쨋든 이게 시작이었다. 학과 생활 부적응의 시작.

한 달 정도가 지나자 새내기들도 이제 슬슬 요령을 피우기 시작했다. 재수강을 위해 같이 수업을 듣는 선배들과 어울려 이래 저래 놀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게 대리출석을 부탁하고, 컨닝을 하는 모습도 보였고, 숙제나 리포트를 베껴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 당시 나는 많이 실망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심하게 고생한 건 아니지만, 대학에서 이런 녀석들과 같이 수업을 들으려고 그렇게 공부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와중에 그렇지 않은 애들도 있었다.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고 차곡차곡 자신의 길을 닦아 나가는 애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서도 그렇게 외로운 공부를 해야되나 하는 생각은 타지에서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어쨋든 그때부터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신나게 놀았다. 그렇게 허송세월을 하면서도 가슴 속엔 은근한 우월감이 있었다. 봐라 이 놈들아, 나는 대리 출석도 하지 않고 숙제도 안 베끼고, 공부를 안 했으면 시험도 치지 않는다. 난 이렇게 놀아대지만, 적어도 내 행동에 책임을 질거다. 이런 은근한 자부심이 있었다. 결국 이 때 마구 놀아댄 것 때문에 인생이 수 년은 늦춰졌다. 다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학사 경고에 의한 강제 퇴학이 98 학번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가슴 가득히 은근한 우월감을 안고서 재수 학원을 등록했어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잘못 끼운 첫 단추는 대학 3 학년 때까지 계속 되었다. 전공 공부를 잘 하고 싶었지만, 기초를 제대로 닦지 못한 채 질질 끌려갔던 것이다. 이대로 더 이상 끌려가면 안되겠다 싶어 병역 특례 회사를 다니게 됐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모든 문제와 부적응의 근원은 나, 본인이었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 했던 나의 의존적인 자세가 바로 원인이었다. 이것은 병역특례가 끝난 후 복학 후의 이야기니까 다음에 이어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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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 Sung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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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ong's Blog

Developer + Entrepreneur = Entrevelo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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