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20% 가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한다는 기사입니다. 부모님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하는 사람도 80 - 90% 나 된답니다. 기사의 논조는 다분히 비난적입니다. 대학이나 온 녀석들이 자기 부모님의 성함도 한자로 못 써! 뭐 이런 뉘앙스 입니다. 조선일보에 실린 사설을 하나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설에서는 심지어 한자가 동아시아의 공통 표기 수단이고, 2000 년 가까이 한국인이 생각하던 수단이므로 한자를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얘기합니다. 중국 사람 잡고 여러분이 아는 한자 써서 보여줘보시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중국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쓰는 글자를 읽지 못합니다. 글을 좀 간소화시킨 간자체만 쓸 분 번자체는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동아시아의 대부분 인구를 차지하고, 한자를 만들어낸 나라에서도 그 복잡함에 치를 내두르는데, 참 이상하죠? 우리 민족을 이해할려면 정말 한자를 알아야 하는 걸까요?
전 다르게 봅니다. 지금 한자의 중요성을 외치시는 분들과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다른 세대 입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세대입니다. 각 세대는 시대에 의해 요구받는 사항들이 다릅니다. 6.25 전쟁 후 우리나라에 있는 책들은 죄다 일본의 영향을 받아 한자 천지 였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공부를 할려면 한자를 배우는 것은 교양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생존 수단 이었을 거라고 봅니다. 한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시는 나이 많으신 분들도 아마 동아시아의 문화를 익히기 위해 한자를 공부하진 않으셨을 겁니다. 한편, 지금의 젊은이들은 또 다른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유주의의 기치아래 무한 경쟁에 노출된 이 젊은 사람들은 살아가는 패러다임이 또 다릅니다.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450" caption="이런 거 외우고 있자구요?"][/caption]사람간에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드는 비용이 높던 시절에는 한자는 무척 유용했었습니다. 적은 글자수로 정확하고 많은 뜻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글을 써서 상대방에게 전할 수 있고, 비용도 들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빨리 읽히지도 않을 뿐더러 몇 글자를 읽기 위해 수 없이 많은 글자들을 달달 외워야만 하는 한자가 도대체 무슨 이점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요? 우리말로 써서 혼란을 줄 것 같으면 옆에다 괄호를 열어 한자를 병행 표기하기만 해도 됩니다. 한자를 쓰는 것도 그렇습니다. 한자의 발음만 알면 컴퓨터가 알아서 다 찾아주는 마당에 한자 쓰는 걸 연습하고 있을 이유는 없습니다.
지금의 대학생들이 한자를 쓰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을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사람들의 잘못도 아니고 우리네 교육의 잘못도 아닙니다. 다만 시대가 바뀌었을 뿐인 거죠. 한자를 척척 읽고 쓰고 하는 것은 이제 대학생들의 교양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보다 전문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들의 영역이어야 할 것입니다.
참고사이트
- 30년 이상 되풀이 된 한글과 한자 논쟁 - 그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