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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프로그래머 B 씨의 직장. 회의실에선 기획자와의 회의가 한 창이다.)

기획자 : "B 씨, 이 작업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또 시작됐다. 왜 방금 알게 된 작업의 스케쥴을 그 자리에서 말해줘야 되는 거지? 하여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야. 내가 나중에 내 회사를 가지게 되면 저렇게는 안해야지. 쯧. 아차, 시간이 너무 지체됐군. 어서 대답을 해주자. 그래야 능력있어 보이지. 좋아 일단 뭔가 생각하는 흉내를 내자.

('음' 하는 소리를 내며 연필 뒷꼭지를 입에 지그시 깨문다.)

어디보자. 일단 저 일을 할려면, 예전에 빼버렸던 소스코드들을 다시 살리는 것부터 해야겠군. 다행히 버전관리툴을 쓰고 있으니 그건 별 문제가 안 되겠어. 아니지. 그때 웹서비스 호출하는 프레임이 바꼈다고 해서 그 작업을 하다가 말았잖아. 프로젝트가 다음 버전에 릴리즈 안된다고 해서 관둔 거였는데, 하여간에 에휴. 아무튼 이건 코딩을 해야겠구나.

(눈동자를 빙글 빙글 돌려가며 뭔가 꼴똘히 생각하는 척을 한다. 한번씩 손을 꼽아가며 계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 다음은 어디 보자. 무슨 일을 더해야 되지? 세부작업이 큰 게 한 덩어리 있을 것 같은 느낌인데, 지금은 잘 모르겠네. 어라 사람들이 전부 나만 빤히 보고 있잖아. 뭔가 리액션을 줘야 돼. 질문을 하나 해서 시선을 돌리자.

"저거 X64 에서도 작동해야되죠?"
"당연하죠."

뭐 어차피 알고 있던 대답이었어.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며 자기들 것도 같은 작업을 해야하는지 생각하고 있군. 좋아. 먼저 큰 작업은 소스코드를 살리고, 예전 프레임웍을 쓰는 부분을 덜어내고, 새로운 프레임웍으로 교체해야겠군. 코드 살리는 거야 한, 두시간도 안 걸릴 거고 프레임웍 교체가 큰일인데. 예전 코드 덜어내는 거야 길어도 하루면 될 것 같고, 새로운 코드 구현은 어느 정돌까? 음. 뭐 대략 4일 정도면 되겠지? 하지만 조금 불안하니 5일로 하자.

(노트에 1+5 라고 쓴다.)

여기에 코드리뷰 받고, 테스터에게 빌드를 넘겨주려면, 어디보자. 5 일 정도 더 추가해야겠구나.

(아까 쓴 숫자 뒤에 다시 +5 라고 쓴다.)

어디보자. 토탈이 11 일이네? 뭐야 이거 두 주하고 하루 더 잖아. 깔끔하게 떨어지지 못하는데? 대략적인 스케쥴이면 주단위로 얘기해주길 바라는 것 같은데, 좋아.

B : "글쎄요. 아직 세부 작업들이 어떤 게 있는지 확인해 봐야 될 것 같은데.."
기 : "아니 뭐 내가 부담주려고 그러는 게 아니니까 편하게 얘기해요.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 거니까"
B : "하하, 네. 음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략 두주 하고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뭐야 그냥 물어보는 거라면서, 왜 미팅 노트에 꼬박꼬박 다 적어 놓지? 젠장, 이거 너무 빡빡하게 잡고 부른 것 같은데, 버퍼를 좀 둘 걸 그랬어. 그나마 '조금 더' 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써 놓길 잘했어.

(약간의 얘기가 더 오간 뒤, 회의는 끝이 났다.)

(그 후 뒷얘기)
사실 웹서비스를 위한 새 프레임웍의 핵심 기능이 아직 구현되어 있지 않았고, 해당 팀에게 문의를 해보니 앞으로 4일 뒤에 체크인 된다고 했다. 일정에 변경이 생겨야 했지만, 그 날 B 씨가 대답한 스케쥴에 맞춰 진행되고 있었고, 관리자의 끊임없는 쪼아대기 덕분에 불가능은 현실이 되어 2주 뒤 구현은 끝이 났다. 수 많은 버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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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 Sung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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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ong's Blog

Developer + Entrepreneur = Entrevelo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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