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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양보 이야기를 좀 해볼께요. 어릴 적 제가 시골에 살 때 어머니와 함께 대구에서 완행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완행버스에는 봇짐을 드신 할머니, 약주를 하신 할아버지등 시골 분들이 가득 타셔서 가곤 했지요. 저희는 좌석표를 사서 갔기에 앉을 곳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께서 옆에 서 계신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하고 당신 무릎에 앉아가라고 하셨답니다. 어린 마음에야 혼자 가는 것보다 엄마 무릎이 더 좋으니 좋아라 하고 달려갔지요. 가끔은 자리 양보를 받으신 할머니께서 미안하다며 저를 무릎에 앉혀서 가셨는데, 엄마 무릎보다 불편해서 잠도 들지 못하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제 의지로 처음 자리를 양보했던 건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던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이때는 시골에서 대구로 이사를 온 상태였지만 그 전에 다니던 학교를 계속 가려고 버스를 타고 다녔답니다. 버스의 종점이 있는 곳에 저희 집이 있었죠. 한번은 버스를 타고 집을 가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타셨답니다. 어떡해야할지 잘 모르고 있었는데, 제 앞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아이가 (분명 저보다 어려보였답니다.)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하고 양보를 해 주는 게 아닙니까? 그 여자아이한테 자극 받아 다음에 저도 기회가 있을 때 양보를 해드렸는데, 양보를 받으신 분이 고맙다며 칭찬을 해주시더군요. 우쭐하기도 하고 기분도 최고였습니다.
[caption id="" align="aligncenter" width="499" caption="다들 표정 좋죠?"]자리양보[/caption]서서히 머리가 굵어지고 자리를 양보하는 게 몸에 배였을 즈음,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옮겨 오게 되었습니다. 입학한지 얼마 안되어 아직도 서울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있을 때였을 겁니다.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해드리며 "여기 앉아 가세요" 라고 했습니다. 고맙다는 얘기를 하면 멋지게 씨익하고 웃어야지 생각했는데, 얼굴 한번 마주치지 앉고 털썩 앉아 가버리시더군요. 그땐 그 분이 성격이 좀 이상한가 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습니다. 대부분의 서울 분들이 그렇다는 걸요. 적어도 제가 고등학생 때까지의 대구에서는 자리 양보를 받으신 어른들이 의례 사양을 하시거나 마지못해 앉으시면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서울의 노인들은 고마워할 줄 모른다는 지역 차별 발언이 아닙니다. 다만 큰 도시고 다들 부대끼며 살다보니 도시 전반적이 스트레스 수치도 높아서 그런 것이겠죠. 어쨋든 그 뒤로도 노약자석과 관련된 험한 꼴을 자주 목격하면서 저는 이제 노약자석 근처에도 가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양보를 하게 되면 '여기 앉으세요' 라는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일어나서 등을 돌립니다. 당연하다는 얼굴을 보고 싶지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보면 노약자석과 관련된 젊은 사람들의 불만이 많습니다. 그 중 대부분은 나이에 비해 인격이 따라가지 못하시는 노인분들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입니다. 강요하는 미덕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며, 그런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일까요? 전 차라리 버스와 지하철 내의 노약자석을 모두 폐지하고 진심으로 양보를 하고 양보를 받는 문화가 생기도록 캠페인등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노약자석이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지 못함에도 그대로 답습하기 보다는 지금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을 다 같이 고민해봐야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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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 Sung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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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ong's Blog

Developer + Entrepreneur = Entrevelo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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